아직은 살만한 모양이다.
절박함이라는 단어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.
그러나 이내 곧 절박해질 것이다.
어쩌면 그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.
이 얼마나 아리러니한 상황이란 말인가?
스스로 절박함을 찾지 못하면, 소멸할지 모른다.
그러니 지금부터 절박해야 한다.
그 임계점을 찾아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.
절박하고, 간절하고, 애가 타야 한다.
지금은 그래야 한다.
앞으로도 그래야 할지 모른다.
그렇게 계속 나아가야 할까?
아니, 혹은 그 정반대일지도 모른다.
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여유 있는 것이 정답일지 모른다.
그저 최후 목표를 역산해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.
그러니 아직은 이 상반된 대비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.
이것은 마치 곡예를 하는 것과 같다.
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.
여태껏 그리 살아오지 않았던가?
절박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?
단 한순간도 절박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던가?
결국은 이 모든것이 학습된 감정의 중독일 뿐인가?
결국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.
무엇이 옳다, 그르다는 기준점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.
자신이 성취해 낸 방법이 옳은 방법이고, 그것은 모두에게 다른 모습일 것이다.
그러니 섣부른 보편화는 금물이다.
하지만, 절대적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.
결국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현재의 핵심이다.
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?
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전해줄 수 있는가?
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?
많은 진전을 이루었다.
눈에 보이는 성과적인 측면은 아니다.
순서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.
먼저는 내면의 세계가 확실하게 구축되어야 한다.
지금까지 알았던 것, 경험했던 것, 소유했던 것,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들이 다가온다.
그것을 현재는 매우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.
그러나 이제 곧 강한 느낌을 동반하고, 결국 외부의 현실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.
그것에 절박해야 한다.
지금까지는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.
아무리 설명해도 지금을 알 수 없을 것이다.
의식의 수준이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.
의식의 수준과 시야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 가장 큰 절박함을 둔다.
이것은 행위의 절박함과는 다르다.
그러니 지금까지의 삶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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